머리칼이 휘날릴 만큼 너무 거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 느낄 정도도 아닌 간지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온다. 이어 그 바람을 칼로 베는 듯한 소리가 여러 번 이어진다. 쐑- 흰 도화지 같은 공중을 가르며 과녁에 정확히 꽂히는 화살들. 내내 가늘게 유지하던 눈을 뜨며 성규는 활을 서서히 내리고 혀를 쯧 찼다. 풀 드로우(Full Draw, 발사에 대한 예측을 하며 슈팅 자세를 2-3초간 그대로 유지하는 것)가 또 흔들렸다.



한껏 예민해진 상태에서 또 그 실수라니. 짜증이 울컥 치민다. 성규의 미간이 좁혀졌다. 활에서 화살이 날아간 뒤에도 풀 드로우 자세는 매우 중요한데, 그래야 슈팅 시에 정확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을 들 때면 순간의 호흡에도 무너지는 것이 밸런스니까. 화살의 길이와 팔 길이가 정확히 일치를 이루고, 이어 부드러운 릴리스(Release, 슈팅)까진 좋았다. 수천, 아니 수만 번 했던 동작이었으니. 그러나 보기보다 급한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는 성규는 잘 쏘다가도 풀 드로우가 곧잘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다혈질이란 성격이 성규의 가장 큰 방해물이었고, 이것이 저번 시즌 국대 선발의 실패 요인이기도 했다. 실력의 차이는 아니었다. 한 해에 어마어마한 실력자가 쏟아지는 양궁이라지만 성규는 단연 우위에 있었으니. 단순 실수, 그게 전부였다. 물론 성규를 질투하고 폄하하려는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기사 메인 타이틀이 뭐?


세계양궁협회 놀라움 표출, 원칙에 철저한 한국 양궁!

올림픽 메달리스트 김성규, 국내 선발전 탈락?

김성규, 국내 양궁 선발전 좌절에 온통 '시끌'


아아... 씨발, 좆이나 까라지. 지들이 해 보고 떠들든가. 성규는 그때의 기억에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투털거렸다. 사람들 입에 자신이 오르는 일은 언제든 달갑지가 않았다. 그것이 성규의 실패를 다루는 일이라면 더더욱. 남들의 그런 시선이 성규가 쏘아올린 화살보다 날카롭게 꽂힐수록 성규는 병적일 정도로 완벽에 집착해야 했고, 언제나 외로움이 따르는 일이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맞는 말이다. 성규는 천재였다. 지난 올림픽 라운드 예선전, 90m, 70m, 50m, 30m, 각 거리마다 36발씩 144발. 도합 1440점 만점에 1425점을 맞힌 괴물 같은 사람이 바로 김성규다. 예선전부터 떨친 명성에 모두의 사기가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남자 개인 4강까지 이어진(준결승, 12발씩 상대와 교대로 한 발) 그의 저력은 트리플 텐이라는 신화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성규 씨는 재능이 남다르시잖아요, 신궁이시라고 말이 많아요. 주몽의 후예, 막 그런 거요. 하하, 천재 맞으시죠? 하는 인터뷰에도 씩 웃으며 네, 맞습니다. 하고 대꾸할 수 있는 노력형 천재. 그래, 맞는 말이잖아. 믿는 구석이 있으니 당당할 수 있는 거야.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나온다고 쳐. 그럼 그때 난 뭐 노나? 하고 뒤돌아설 수 있는.


눈가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피라니아 같은 기자떼를 향해 성규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다 퍼부었다. 뒤로 자빠져도 핸드폰 액정 깨질 새끼, 명절에 조카에 팔촌까지 와서 지갑 털릴 새끼, 만원 지옥철에서 급똥 올 새끼, 로또 3등으로 떨어질 새끼, 새로 산 셔츠에 아메리카노 쏟을 새끼, 같은. 늘 힘주어 당긴 현 덕에 입술 위의 두 보조개보다도 깊게 자리잡은, 입가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깊은 선을 매만지며 성규는 화살을 확인했다.




9, 10, 10, 9, 8, 10... 나쁘진 않았다. 뭐... 완벽한 정도는 아니고 나쁘진 않은, 딱 그 정도. 배고파서 집중력이 좀 떨어진 게 문제였을까? 아침 운동 후 쉴 틈 없이 내리 이어진 연습이니 그럴 만도 했다. 긴장이 풀리니 덜덜 떨리는 손가락과 팔뚝은 좀 쉬자고 말하는 것도 같았다. 그래, 일단 연습도 식후경. 밥부터 먹을까. 화살을 대충 정리하고 한켠에서 잠자고 있던 핸드폰을 깨웠다. 깨우자마자 아우성을 치며 쏟아지는... 메시지들. 징징 울리는핸드폰을 보며 성규는 얘도 참 안 지친다는 생각을 했다.

 

[뭐 해요? 연습 중?   07:11]

[나 늦잠 자서 밥도 못 먹고 운동 ㅠㅠ   07:12]

[아직도???   10:02]

[이따 같이 점심 먹을래요?   12:48]

[형 나 지금 간다!!  13:20]


마지막 메시지를 읽자마자 운동장 끝에서 익숙한 인영이 뛰어온다. 새끼, 타이밍 하나는.... 형!! 하고 세상 떠나가라 외치는 통에 화살을 날리던 양궁장의 얼굴 몇이 돌아본다. 이내 아, 쟤- 하는 시선들이 흩날리더니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한다. 주목이란 주목은 다 끌고 다니네. 괜히 덩달아 쪽팔려진 성규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늦게 읽은 자신을 탓했다. 적어도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할 수 있었으니. 하여간... 몸 쓰는 새끼들은 무식해서, 진짜.... 어느새 헉헉거리며 앞에 도착한 남우현이 숨을 고르는 꼴을 본다. 




축축한 머릿결에서 불쾌하지 않은, 익숙한 땀 냄새가 훅 끼친다. 젖은 얼굴이 유독 야살스러운 놈. 남우현은 언제 봐도 적당히 탄탄한 어깨에 딱 붙는 흰 티셔츠가 어울렸다. 여전히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선 그 얼굴에는, 역시 흰 티셔츠가 제격이었다. 물론... 가장 섹시한 건 파란 유도복이었지만. 시답잖은 생각들 사이에서 내내 뚱한 표정을 달고 있던 성규가 입을 연다.



-야, 너. 내가 풀밭에서 뛰지 말랬잖아.

-보자마자 첫 마디가 뭐 그래요, 형. 근데 왜? 여기 벌레 많아?

-풀 만난 개새끼 같다고, 우현아. 산책 안 다니니.

-뭘, 형은 또 그 소리.... 이제 날 그냥 개로 보지?

-배고파, 밥이나 먹자. 오늘 뭐 먹을래.

-계속 이렇게 안 받아 줄 거면 나 이제 여기 안 온다, 진짜.

-오지 말래도 오면서 무슨.

-오지 마? 형 나 쪽팔려?

-어... 가끔?


달랑달랑, 보 케이스를 매단 성규의 등 뒤로 달랑거리며 뒤를 쫒는 개새, 아니... 남우현이 있다.



성규가 노력형 천재라고 했던가. 남우현은 그냥 천재였다. 딱히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타고난 아이. 떠오르는 햇살, 유도의 새로운 태양. 하늘이 내린 한국 유도계의 신예. 언젠가 한번 사람들을 보며 성규는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릴 해 대는 걸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좋고 화려하고 빛나는 수식어는 다 쓸고 다닌 남우현이었으니. 그게 어느 정도냐고? 빙상 위에 퀸이 있다면, 매트 위에는 남우현이 있다고 말이 떠돌 정도였다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남우현은 완벽했다. 아직 젊은 선수일수록 유도계가 거는 지지와 기대는 남달랐고 남우현은 그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았다. 다른 선수와 비교해 볼 때 약간은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올림픽에 서기도 전부터 남우현의 국내외 대회 성적은 출중했기 때문에. 거기에 준수한 외모라니. 혹자는 남우현을 두고 너무 다 가진 것 아니냐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팬을 잡으려면 여성팬을 잡으라는 명언도 있는 마당에, 초미의 관심사에 오른 우현이기에. 외신은 그런 우현을 두고 THIS is a gift from GOD! 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앞으로 우현의 행보 하나하나가 모두의 관심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한 그림이었다.



그 인기 많은 태릉의 천재 둘이 뭘 하냐고?

웃기게도, 썸을 타는 중이다.



***



물론, 썸씽의 범주에 몸 섞는 것도 포함이라면 말이다. 운동을 하면 식욕만 따르는 줄 아는 병신 새끼들이 많은데, 성규는 그런 새끼들에게 늘 3S를 외쳐 주곤 했다. 스크린(Screen)에 나오는 스포츠(Sports) 선수에게 섹스(Sex) 외의 것을 논하지 말 것. 뭐... 3S 정책이 저런 뜻이 아니라고? 근데 어쩌라고?



-아, 형. 잠깐, 잠시만, 흐... 읍, 나, 나 연습... 아으,연습 가야, 돼....

-어, 알아. 아는데... 이것만 빼고, 후, 어? 우현아.

-여기서 어떻, 읏, 아.... 어떻게, 해. 미쳤어, 진짜.

-안 들켜, 걱정하지 마.

-씨발, 들키면 형이나 나나 진짜, 좆되는 거야.


철컥, 다급한 손으로 화장실 문을 잠그는 우현의 손이 재빠르다. 들키면... 올림픽이고 국가대표고 나발이고.... 남우현이 현실 걱정에 허우적거릴 때,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김성규가 가만히 있을 리가. 동시에 쾅, 하고 문으로 밀쳐진 몸 덕에 등허리는 찌르르 울리고 우현의 눈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급하게 형! 하고 외쳐 보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은 성규의 입술로 먹혀들어갈 뿐이었다. 성규가 킥킥대며 요령 있게 계속 혀 섞어대는 통에 머리통 계속 저으며 피하려는 우현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만다. 원투 데이 섞어 본 입술이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금세 페이스 맞춰 오는데, 대체 이게 사랑스러움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여우 같은 강아지 새끼, 하고 성규는 우현의 입술을 물며 생각했다. 아까부터 우현의 허리께를 쓰다듬는 성규의 손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손이 슬슬 올라와 가슴팍에 닿을 때, 진짜 울 것 같은 표정을 숨길 수 없는 우현이었다. 흰 티셔츠 위로 툭 튀어나온 부분을 슬슬 문지르고, 단정한 손톱으로 꾹 찍어 누르니 움찔, 우현의 몸이 튄다.


-형, 나 진짜, 응... 김성규, 그만, 그만....

-걱정 마, 애새끼야. 빨리 하고 끝낼게. 안 들킨다니까.


뭘 안 들켜. 난 그냥 무섭다고, 씨발놈아! 이런 우현의 마음을 아는지, 그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자세 조금 낮춰 우현에게 시선 맞춘 성규가 아래서 올려다보며 픽 웃는다. 눈동자에 욕정이 들끓는 게, 저 인간 제정신 아닌 것 같애. 우현의 머리에 빨간 사이렌이 울린다. 위험, 위험, 김성규 또라이 새끼에게 50m 거리를 유지할 것.... 이런 우현을 김성규는 척이 아니라 그냥 모르는 게 맞다. 입가에 대고 정신없이 뽀뽀하며 속삭이는 통에 마음 편히 정신줄 놓고 싶은 건 우현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그렇게 텅 빈 숙소에서 하자고 해도 빼더니, 미쳤냐고 진짜.... 이제 우현은 감당할 수 없이 달아오른 섹스 텐션에 울고 싶은 건지, 숨어서 입 틀어막고 섹스해야 할 상황이 좆같아 울고 싶은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 흑, 씨발.... 형, 나 진짜.... 남우현이 아직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바쁘게 머리통을 굴리며 신음하고 있을 때, 김성규는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 내 이 좆같은 공간 안에서 최대 효율로 남우현을 빨아먹을지 지니어스 머리를 써먹고 있었다. 이곳저곳 제 집처럼 우현의 몸을 쏘다니던 성규의 손은 어느새 자연스레 허리 뒤로 넘어갔다. 툭 튀어나와 이를 박고 싶은 뼈를 지나, 빠질 것 같은 골 사이의 좀 더 아래. 운동으로 잘 다져진 탐스럽고 통통한 엉덩이를 콱 소리가 날 정도로 쥐니, 


-아! 흐, 읏....


귀가 즐거운 소리가 난다. 흥분에 겨워 제가 뱉고도 놀랐는지 꽤 크게 나온 소리에 입을 틀어막는 남우현이었다. 어느새 물기를 단 눈꼬리를 세상 모르게 축 내리며, 막은 손으로 끙끙대기 바쁘다. 유달리 하얀 손과 확연히 대비되는 벌게진 얼굴. 그게 김성규에게 얼마나 씹스럽게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순간 모든 행동 올 스톱인 성규가 떨리는 손으로 우현을 잡아세웠다. 욕망에 젖어 흔들리는 눈동자, 저를 물고 빨아 번들거리는 입술, 한계를 알리는 듯 헉헉대며 턱 막히는 숨결. 까드득, 짓씹듯 단어 하나 하나를 뱉는 김성규에, 우현의 심장이 쿵쿵 뛴다.


-우현아, 너... 바로, 연습 가야 돼?

-어? 어... 남자 일반 한판승 할 거라고, 해서....

-그럼 넣는 건 안 되겠고.... 어, 우현아, 이거 잡아 봐.


뭐? 넣는 게 뭐, 어떻다고? 우현의 귀로 들어온 성규의 말이 머리에 들어가 채 필터링이 되기도 전에 널찍한 대리석 위, 세면대 사이에 상체만 엎어진 우현이 있다. 쿵- 하고 물기 어린 대리석에 닿는 팔꿈치에 파드득 놀란 우현이 더 놀란 토끼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면, 헐렁한 트레이닝 복을 벗기고 있는 성규만이 눈에 가득 찬다. 순간 아찔해진 우현은 잡을 것도 없는 바닥에 닿은 손에 힘을 꾹 주며, 어느새 발등에서 달랑거리는 트레이닝 복에 통하지 않는 원망만 한다.


-아, 씨발. 여기서 이렇게 하긴 싫었는데.

-그, 그럼 안 하면, 안 하면 되잖아.

-여길 이렇게 세우고 그딴 소릴 해?


자기 좆같은 성질머리가 가긴 어딜 가. 제대로 꼴린 건지 앞뒤 가릴 것 없이 으르렁거리는 성규에 우현은 살짝 겁을 먹었던 것도 같다. 섹스할 때면 정신 놓고 매달리는 편은 주로 우현이었는데, 어쩌다 핀트 나간 날에는 상황이 역전이었다. 꼭 오늘처럼.


잔뜩 흥분한 자신을 두고서 아직도 멀쩡한 척, 그만둘 수 있는 척, 그렇게 이성 챙긴 식으로 나오는 우현이 괘씸한 건지, 뭔지. 벌을 주는 것처럼 성규가 힘을 주어 꾹 눌러오는 아래에, 하윽, 아! 앗, 흐으... 으, 응! 우현은 고갤 처박고 그저 신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 씨발.... 우현의 얼굴 바로 앞, 번쩍이며 빛나는 거대한 거울이 헉헉대는 두 사람을 비춰 보인다. 


-우리 서로, 후... 연습 방해하진 않기로 했으니까,형이 봐주는 거야, 우현아. 무릎 벌리지 마. 허벅지에 힘 줘. 

-흐... 어? 형, 나 이거 너무 힘들, 으, 힘들어....

-어이, 국대. 버틸 수 있어, 없어.

-싫어, 으으, 흑... 씹, 개새끼, 진짜아....

-제대로 안 조인다거나 다리 무너지면 예쁜 입에 박을 거니까 알아서 해. 싫으면 참든지.


들키면, 들키면 진짜 끝이야.... 등 뒤로 쏟아지는 수치스러운 말에 잔뜩 달아오른 우현이 긴장한 허리에 힘을 빳빳히 준다. 한쪽은 엎드린 채 대리석 위로 자리한 세면대에 손을 대 뼈마디가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주어 붙들고, 다른 손으론 신음이 새는 입을 꾹 틀어막는다. 눈 위로 거울에 잔뜩 비치는 자신의 달뜬 얼굴은 애써 무시하고서. 뜨거운 성규의 손이 배 아래로 들어와 자세를 가다듬을 때, 헉 하는 숨이 우현의 입가에 급히 샌다. 달뜬 숨보다 더 뜨거운 것이 우현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 때, 우현은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그때,



철커덕,

잠긴 문고리를 돌리려는 손에 성규와 우현의 고개가 돌아간다.


어...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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